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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로

세로

細路

근생의 숙명, 관계의 여과

근린생활시설은 태생이 주거지 안에 위치한 상업시설이다. 6m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열지어 늘어선 근린생활 시설과 주거들은 서로를 바라볼 수 밖에 없지만, 그 시선은 늘 불편하다. 창은 있지만 쉽게 열 수 없고, 열려 있어도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없는 닫힌 창이다. 신사동 세로수길 일반주거지에 위치한 작은 사옥인 ’세로 (細路)’는 닫힌 도시적 맥락 속에서 주변과의 시선의 간섭에서 벗어난 창을 위한,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 방법에서 시작되었다.

자생풍경

도심의 밀집된 건물들 사이에서는 외부를 향한 조망이 쉽게 닫히고, 창 너머의 풍경은 하늘의 조각이나 인접 건물의 벽면에 머무르기 쉽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풍경은 더 이상 외부에서 주어지는 배경이 아니라, 건축 내부에서 새롭게 구성되어야 하는 요소가 된다. 특히 좁은 대지에서 임대면적 확보가 중요한 상업시설의 한계 속에서, ‘세로’는 켜를 이루는 입면의 깊이와 그 패턴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변화를 통해 내부에 새로운 풍경을 형성하고자 했다. 이는 외부 풍경의 부재를 결핍으로 남겨두는 대신, 건축 스스로가 하나의 풍경 장치가 되어 내부에 새로운 시각적·감각적 경험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이다. 도시를 향한 균질한 입면은 복잡한 도시 환경 속에서 하나의 공백이자 침묵하는 표면으로 작동하며, 주변의 혼재된 풍경과 대비되는 새로운 도시적 풍경을 형성한다. 자생풍경은 척박한 도시 경관과 시선의 이해관계 속에서 건축 내부에 스스로 풍경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이는 제한된 대지 조건 안에서도 건축의 구조와 재료, 빛의 흐름을 통해 공간의 분위기를 구축하고, 닫힌 도시 맥락 안에서 내재된 풍경을 만들어 냄으로써 공간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층화된 입면

‘세로’는 층별로 서로 다른 열림의 밀도를 갖는 입면을 통해 도시 맥락에 대응한다. 보행자 레벨의 저층부는 가로와의 시각적 연계성과 진입의 인지성을 높이는 동시에, 좁은 전면도로와 맞은편 건물로 인해 불리한 채광 조건을 보완하기 위해 가장 높은 투명도의 커튼월로 계획하였다. 반면 상층부는 주변 주거 건물과의 시선 간섭과 밀집한 도시 맥락을 고려하여, 층마다 밀도를 달리한 루버를 통해 시선의 개방 정도를 조절한다. 특히 상층부는 입면의 깊이를 다층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이중 파사드 방식으로 구성되며, 내부의 전면 커튼월은 자생풍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외부의 벽돌 루버는 주변 풍경과의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밀도로 반응하며 여과된 입면을 형성한다. 이처럼 ‘세로’의 입면은 저층의 투명한 개방에서 상층의 선택적 여과로 점진적으로 전이되며, 복잡한 도시 환경 속에서 새로운 풍경과 공간 경험을 만들어내는 건축적 장치로 작동한다.

움직임 속의 공공공간

작은 근린생활시설에서 공용공간은 임대면적의 효율을 위해 최소화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저층 상업시설에서 계단은 이용자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거의 유일한 공공공간임에도, 대개 건물의 후면이나 빛이 닿지 않는 위치에 배치되어 단순한 수직 동선으로 축소된다. ‘세로’의 계단은 수직 이동을 하나의 연속된 공간 경험으로 전환한다. 전면도로에서 바로 연결되는 외부 계단은 보행자의 흐름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 끝에서 작은 정원을 마주하게 한다. 2층과 3층을 잇는 계단은 불투명한 유리블록을 통해 빛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반외부 공간으로 계획되었으며, 3층 계단참에서는 아래층의 정원이 내려다보인다. 4층에서 옥상정원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큰 창을 통해 밝은 빛과 옥상의 풍경을 끌어들인다. 1층에서 4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은 정원과 빛의 밀도, 시선의 변화,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달라지는 장면들의 연속으로 구성되고, 이동하는 동안 층마다 변화하는 풍경과 공간의 깊이를 경험한다. 이처럼 ‘세로’의 계단은 단순한 기능적 동선을 넘어, 움직임 속에서 풍경을 발견하고 머무름을 유도하는 장소가 되며, 작은 근린생활시설 안에서 공공성을 확장하는 공간적 장치이다.

위치 :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용도 : 근린생활시설
대지면적 : 182.2 ㎡
건축면적 : 109.3 ㎡
연면적 : 468.03 ㎡
건폐율 : 59.99 %
용적률 : 198.91 %
규모 : 지하 1층, 지상 4층
구조 : 철근 콘크리트
설계담당 : 박효택
사진 : 장미

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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